우물은 공사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연못이 그대로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조금은 틀려도 된다, 이것이 옛날에 전세살면서 생활하시던 분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그것 때문에 복원을 못한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적 인물의 생가 땅에 음식물 쓰레기가 묻혀있다, 왜 복원을 못할까, 그 쓰레기를 버리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차로 계산해 봤어요.
선생님하고 계산해 보니까 얼마 안 들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가에 대한 복원 문제, 앞에 유적공원 한다고 유적발굴하고 쭉 있던데 이런 찰나에 복원사업도 같이 만들어가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을 드립니다.
특히 정임석 열사는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4.19의 민주화운동에 나서서 싸웠던 유일한 울산의 한 분 계신 분입니다.
딱 한 분이고 경무대 앞에서 당시 부정선거에 항거해서 한양공대 재학 중에 경찰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4.19는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서 바다에 떠밀어서 시작된 의거인 만큼이나 경찰의 총탄에 맞아서 순국하신 그것도 대학 2학년 때 자유당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만들어갔던 분이 우리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분에 대해서 저는 몇 번 제기했는데, 여기가 묘소입니다.
묘소에 가면 요즘은 많이 꾸며서 비석도 하나 만들어 놨고 태극기도 있는데, 제가 6년 전에 중산동에 살 때 이분의 묘소에 가보니까 처음에는 누구 묘소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4.19만 되면 플랜카드가 우리 집 앞에 붙었습니다.
‘4.19 정임석 열사의 추모행사’ 그래서 따라 가서 보니까 이분의 묘소였더라고요.
저는 왜 여기에 태극기가 꽂혀 있었는지 몰랐거든요. 그때는 비석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관리가 안 되고 있었던 것이고, 정임석 열사 비석 추모비도 시인 박목월 선생님이 시를 써서 보존할 만큼 이런 역사적 자료와 인물이 왜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순금산이라는 작은 산에 찾지도 못하는 구석에 묘 하나 안치되어 있을까, 추모행사는 그렇게 추모행사로 끝낼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올해 추모제를 지냈던 것이고, 기박산성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에 제가 좀 제기를 했던 문제였는데, 다른 지역에 가면 기박산성제 의병제를 2박3일 축제로 합니다.
축제로 벌이고 축제의 내용을 보니까, 충북제천에 의병제 자료를 찾아보니까 추모제는 물론 지냅니다.
추모제 이후에 의병들이 먹었던 밥을 재연해서 해보는 것, 그다음에 아이들 데리고 의병들이 결었던 길을 가보는 것, 의병들이 짊어지고 갔던 포대를 가지고 가족체험도 해보는 것, 의병들이 했던 다양한 체험들을 축제화 시켜서 만들었더라고요.
아이들도 의병들의 깃발을 들고 가보니까, 재작년에 이야기할 때 TV를 보고 이야기를 했는데, 굉장히 힘겨워하는데 갔다 와서 인터뷰하는 내용이나 평가서를 올해도 보니까 굉장히 즐거워하고 우리 의병들이 임진왜란 때 이렇게 맞서서 나라를 구한 조상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느끼는데, 우리는 그런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모행사만 지냅니다.
작년에 제출된 자료에 보면 학생들을 동원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농소중학교 아이들이 이번 추모행사에 왔더라고요. 그 애들이 와서 제사지내고 추모행사 하는 1시간 반 동안 그 땡볕에 앉아 있었습니다.
태반이 졸고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조는 학생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앉아 있어도 졸겠더라고요.
저는 구청장님하고 의장의 신분으로 그때는 제사지낸다고 왔다갔다 하면서 있었지만, 그 행사하는 한 시간 반 동안 앉아 있는 어르신들과 아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물어봤어요.
‘어땠어?’
‘몰라요.’
‘재미있었어?’
‘재미없어요.’
‘왜 왔어?’
‘가라고 해서요.’
그냥 수업시간에 여기에 동원되어 왔던 겁니다.
그런 취지로 아이들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어르신들한테 물어보니까 기박산성 쪽으로 해서 관문성 쪽으로 가면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견학을 갔다온 이후에 정말 이분들이 먹었던 주먹밥 하나를 나눠먹는 체험 속에서 그분들의 정신을 기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흔적만 쭉 남아 있는 겁니다.
공원화 되어서, 주민들은 이것이 기박산성을 추모하는 공원인지, 그냥 공원인지 모릅니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그래서 간단한 의견을 드리면 우리 구 출신의 역사적 인물을 하나의 추모행사로 끝내지 말고, 추모비, 동상, 보존하는 것으로 머물지 말고 ······
박상진 생가에 가본 사람이 ‘동상은 어디 있어요?’ ‘학성공원에 있습니다.’
‘학성공원이 어디에요?’ 거기에 있다가 학성공원까지 데려가서 동상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북정동까지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문제에도 신경을 쓰셔야 되는 것이고, 그분들에 대한 자료를 정말 책으로 만들고 우리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배워야 되는 것 아니냐, 그래야 역사적 의미도 있고 그분들이 가졌던 애국심과 효심을 우리 주민들과 아이들이 배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기에 나와 있듯이 박상진 생가 풀 벴다, 이랬다, 저랬다, 이렇게만 나와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기본이고 어떻게 역사적 자료를 고증해서 자료화시키고 이것을 홍보하고 또 우리의 자산으로 만들어갈 것인 가에 대한 문제들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그다음에 북구 문화재에 대해서 간단하게 영상을 좀 보십시오.
(프레젠테이션으로 질의 중)
국가문화유적지 및 관광지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많이 붙어 있는데, 여기에 제가 주민들과 답사를 쭉 한 번 해 봤습니다.
해보면서 느낀 점을 들어 보니까 북구의 문화유적지 및 관광지에 나와 있는 것이 야경, 무룡산 등등이 나와 있는데 실질적으로 우리 지역에 중요한 문화가 많이 빠져 있다, 예를 들면 중산동에 있는 터라든지 중산동의 문제라도 몇 개는 넣고 많이 빠져 있거든요.
사진이 작아서 설명을 안 했는데 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가치가 있는, 여기에 문화재라고 쭉 해 놨는데 시 지정도 있고 많이 있지 않습니까.
가치가 있는 부분을 소개를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이 들고, 문화재를 보면 마애여래좌상입니다.
한 번 물어볼게요.
마애여래좌상 옆에 있는 절, 마애사가 우리 유적입니까?